나는 섭이다. 다수의 어떤 에세머들처럼 어떠한 계기로 나의 성향을 깨달은 적은 없다. 다만 그냥 알고 있었다. 나는 섭이라고,

주종관계에서 나는 주인님을 섬기며 여러가지 플레이들을 통해 주인님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고 반면 그 주인님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사랑이라는 (SM은 우리만의 사랑의 표현 방식이다) 감정을 깊게, 그리고 강렬하게 느끼고 싶었다. 

 

하지만 온라인에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무섭다. 특히 요즘 같이 흉흉한 세상 속에서 나와 가치관이 맞는 아주 "착하고 순수한" 사람을 찾는 것은 어렵다는 편견이 있었다. 나 뿐 아니라 모두 그렇게 생각할 것 같다. 하무렴 소개팅 어플도 하기 어려운 시대이다. 위험하니까. 그럼에도 사람들은 하게 된다. 왜냐? 이성을 원하니까. 나 또한 지난 연애가 어설픈 SM적인 요소가 포함되었던 상태에서 끝을 보았기 때문에 더욱 더 궁금했다. SM의 세계가. 그리고 나는 이미 내 자신을 섭이라고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리스크를 감안해서라도 만나보고 싶었다. 

 

나만의 돔. 나만의 주인님. 그리고 나만의 연인. 나에게 신뢰를 주고 사랑을 줄 그 사람. 

 

커뮤티니에 구인글을 올렸다. 상당한 쫄보인 나여서 글을 올린 후 후회를 하고 한 달 뒤에나 쪽지들을 보았다. 그 중 나이 차이가 너무 많이 나는 사람 (나는 나이에 대한 편견은 없지만 이 쪽 세계는 처음인지라.._), 애초부터 오컨이 제일 좋으며 플레이 후에는 섹스로 마무리한다는 젊은 남자, 일반인과 다를 게 없는 사람이지만 글에서 매력을 느끼지 못한 사람들. 이러한 사람들은 일단 연락을 취하지 않았다. 

 

그 중 몇 명이 점잖아보였고 사람도 좋아보였다. 하지만 내가 예술에 종자하는 사람이다 보니 대화가 통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어떤 분이 음악을 하신다고 하더라. 약간 진지충 같았지만 그게 그 나름 매력이 있던 것 같다. 어떤 분들은 첫 대화부터 SM이니 디엣이니, 이런 이야기를 하였다. 나는 섭이기 전 여자다. 그런 나로서는 불편하고 부담스럽기 때문에 무례하다는 생각밖에 안들었다. 하지만 그 분들도 플레이를 원해서 구인을 하였고 연락이 닿았으니 SM 이야기를 꺼낸 것 뿐 잘못한 것은 없다. 그저 다른 것이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말.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것이다." 그렇다. 그들은 그냥 나와 달랐다. 내가 찾는 누군가가, 나의 돔이 되길 바라는 사람은 아니었을 뿐이다. 분명 다 좋은 사람이었을텐데 말이다. 

 

하여간 다시 앞 단락으로 돌아가서 내가 언급했던 음악을 하신다는 그 분. 그 분과는 뭔가 대화가 조금 통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나도 음악에 관심이 많고 음악을 하는 남자에 대한 섹시함을 알고 있다. 그래서 얼굴도 몰랐지만 끌렸다. 나는 충동적이며 확고한 스타일이라 한번 꽂히면 다른 사람들은 (혹은 물건들) 재지 않는다. 바로 수 많은 돔들과 대화를 나누다 오픈카톡 방을 펑했고 이 분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Posted by 주관적 엠버 :

2019년 엠버, 그리고 연디

2019. 6. 19. 13:16 from 엠버

2017년을 마지막으로 글을 써보지 못 했다. 여러가지 기쁨도, 아픔도, 수많은 인연들도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2019년 나는 30대에 가까워지는 나이가 되었다. 바로 직전에 만났던 연인은 나에게 달콤함을 가져다 주었고 고통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나의 내면에서 갈망하고 있던 무언가는 해소되지 못 했다. 몇 달 후 나는 굉장한 고민 끝에 용기를 가지고 누군가를 만났다.

 

그리고 이제부터 시작 되었다.

 

나의 연애 주종관계.

 

이제부터 이 블로그의 글들은 (물론 나의 여러가지 주관적 생각이 담긴 글도 있겠지만) 나의 첫 디엣관계에 대한 일기, 또는 수필로 채워나가려고 한다. 내가 느끼는 감정들. 특히나 달콤함 위에 덮어진 쓰디 쓴 고통의 쾌락, 그리고 그 안에서 나의 돔과 나누는 정신적인 교감 등 기록할 것이다. 

 

SM, DS 또는 연애디엣에 관심있는 분이라면 누구나 가볍게 읽어주셨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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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버 소개  (1) 2017.11.28
Posted by 주관적 엠버 :

NETFLIX에서 미국 아마추어 포르노 산업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배우들은 대체적으로 열여덟에서 스물 한살 정도. 작은 타운을 떠나 큰 미래를 꿈 꾸며 포르노 산업에 뛰어든다. 내가 본 그 어린 소녀들은 예뻤다. 예뻤지만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해서는 깊은 생각을 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생각을 아예 안 하는 것도 아니다. 나름 자신만의 철학이 있었다. 그저 내가 보았을 때 그 사상들이 멋있어 보이진 않았다. 부모님은 괴로워한다. 남자친구가 속상해한다. 이 일을 그만두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나는 생각보다 어린 시절부터 포르노를 접했다. 자극에 익숙해져버려 더 큰 자극을 원하는 것인지 아니면 나의 내면 깊히 숨져긴 갈망이 표출되기 시작한 것인 지는 모른다. 하지만 최근 굉장히 끔찍하다고 하면 끔찍하다고 표현할 수 있는 포르노를 보았다. 딥쓰롯이 바로 그 장르다. 나는 섹스를 할 때에도 이따금씩 딥쓰롯을 한다. 하지만 영상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행위들이 선보여진다. 일명 '안면 학대'라고 했던가. 무자비하게 여배우에게 강제로 오럴을 시킨다. 왜인지 모르게 나는 아주 잠깐동안 흥분을 해버린다. 하지만 3초 뒤 나는 소름이 끼친다. 죄책감이 들고 마음이 아프다. 이런 장르의 포르노 사이트들이 조회수가 가장 많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 만큼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강압적이고 여성에게 수치를 주며 육체적으로 고통을 가하는 영상을 감상한다는 의미지 않은가. 그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본 뒤 다시 나 자신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았다. 


다큐멘터리에서 어떤 여자가 말했다. 자신의 첫 데뷔 촬영이 바로 그 강제 오럴 섹스였다고. 설명을 하는 그녀의 눈빛에서 나는 읽어버렸다. 전혀 즐겁지 않았다고. 하고 싶지 않았다고. 하지만 그녀의 입은 다른 이야기를 했다. (좋았다고도 안했다.) 그녀는 연기라고 말을 했다. 그 동영상을 보고 흥분하는 취향의 남자들이 자신의 영상으로 대리만족을 하며 일반적인 여성에게 똑같은 짓을 하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하였다. 그래서 괜찮다고 하였다. 그녀의 인터뷰는 인간적이었다. (대부분 이런 촬영은 신인 여배우들이 겪는다. 경험이 없는 그들은 원치않는 상황 속에서 원치않는 행위들을 부정해도 되는 지, 그만두고 싶다 말하고 나가버려도 되는지를 모른다. 또한 자신이 프로기에 이 끔찍한 상황을 공적으로 받아들여야한다는 생각 또한 혼란을 준다고 한다.)


낮에는 듀크 대학생이며 밤에는 포르노 배우로 유명세를 떨친 BELLE KHNOX(스펠링을 모르겠다)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그녀를 취재한 내용은 전혀 아니었다. 이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포르노 배우들이 그녀의 기사를 읽으며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낮에는 대학생, 밤에는 포르노 스타로 각종 메인스트림 프로그램이나 기사에도 등장한 바가 있다. 그녀의 말투는 명량하고 총명한 학생같았고 자신의 가치관이 굉장히 뚜렷하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하는 의지가 강해보였다. 하지만 그녀가 정작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모든 포르노 배우들과도 같은 마인드였다. 특별한 것은 없었다. 다큐멘터리에서 그녀의 인터뷰를 보는데 배우들의 매니저인 남자가 얘기했다. 이 여자 (BELLE KHNOX)도 강제 오럴 섹스 포르노가 첫 데뷔작이었다고. 그들은 함께 그녀의 영상을 시청했다. 뉴스에서 인터뷰할 때 보이던 총명한 눈빛과 확신에 찬 그녀의 목소리는 없었다. 새디스트의 말을 빌려 그저 한 마리의 '암캐'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암캐'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 어떤 여자에게도 그런 단어를 쓰고 싶지 않다. 이 상황을 표현하기 위해 새디스트의 단어를 빌렸다고 이야기하였다.) 


다큐멘터리를 보며 내가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포르노 배우들을 얼마나 인간적인 시각에서 바라봤는지, 앞으로 포르노를 볼 때 어떤 생각으로 보게 될 지. 위 사항 중 알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지만 다큐멘터리 자체는 킬링타임용 보단 이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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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성인이 되었다. 내가 하던 공부는 정말 매력적이었다. 연애를 할 생각은 없었다. 남자에게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고등학교 시절부터 상상을 해오던 '그녀들'과의 망상은 끊기지 않았다. 스무살. 딱 머리속의 호기심을 행동으로 옮길 용기가 생기는 나이. 내가 접속했던 사이트는 한 인터넷 카페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레즈비언 커뮤니티에서는 딱히 활성화 되어있던 공간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 곳에서 나는 동갑내기 친구 제이를 만났다. 나와 똑같이 호기심을 행동으로 옮긴, 같은 선상의 여자 아이. 제이는 자신이 바이섹슈얼이라고 말을 했다. 나도 내 자신을 바이섹슈얼이라고 이야기했다. 제이와 나는 아주 급격히 친해졌다. 그렇다고 나와 제이 사이에서 친구 이상의 해프닝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녀의 이상형은 머리가 길고 여성스러운 언니같은 이미지의 여성이었다. 나와 반대인 샘이었다. 하지만 나도 내가 '남자같은' 여자를 선호하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제이에게 성의 경계가 모호해보이는 여자와 똑같이 성의 경계가 모호해보이는 남자가 섹시하다고 이야기하였다. 제이는 그런 나의 성적 취향 (혹은 미적 취향)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도 우리의 성격은 잘 맞았고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다. 무엇보다 제이는 나의 취향에 대해 함부로 판단하지 않았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레즈비언 클럽에 처음 간 것도 제이와 함께였고 서로 첫 애인을 사귀었을 때에도 우리는 모든 것을 공유하는 친구였다. 그렇게 수 많은 해가 지난 지금도 제이와 나는 여전히 친구다. 이 세상 사람들 중 제이만 알고 있는 나의 비밀도 있다. 시작은 같은 선상이었지만 현재는 조금 다른 위치에 있는 제이와 나. 그 만큼 어른이 된 우리는 각자 내면의 정체성에 한 발씩 더 가까워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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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워드와 셰인  (0) 2017.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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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워드와 셰인

2017. 11. 28. 14:55 from 엠버의 이야기

내가 처음으로 여자에게 관심을 가진 것은 고등학생 시절이었다. <L워드> 라는 레즈비언 소재의 미드를 보고 극 중 셰인이라는 인물에게 너무 빠져들었다. 그녀의 중성적인 매력이 섹시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나에게 그 중성적인 매력은 '남자같은' 여자가 아닌 성별에 대한 경계가 없는 듯한 면이었다. 그녀는 나쁜 여자였다. 한 사람과 진중한 관계를 가지지 못 하고 지속적으로 여자를 찾게 되는 그녀가 안타까웠지만 간혹 특정 인물을 향한 그녀의 행위 안에서는 형언할 수 없는 진심이 느껴지기도 했다. 나는 그런 여자를 만날 수 있을까? 그런 여자와 사랑을 하게 된다면 얼마나 황홀할까? 나는 내가 그녀와 비슷한 여자들에게 빠져있던 사실을 친구들에게 숨기지 않았다. 친구들은 장난처럼 받아들였고 나도 그저 호기심인 줄만 알았다. 그 때까지 여고에 다녔었고 남자와 사귀어 본 적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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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자가 좋은가? <제이와의 만남>  (0) 2017.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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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버 소개

2017. 11. 28. 11:10 from 엠버

저는 엠버라고 합니다. 이 블로그를 시작한 이유는 글을 쓰고 싶어서 입니다. 저의 경험과 생각들, 주관적인 입장들과 관심있는 분야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감정을 표현하고 싶습니다. 


저는 범성애자입니다. 범성애자는 영어로 pansexual이라고 합니다. 범성애가 양성애와 다르게 구분될 수 있는 가장 큰 특징은 젠더 블라인드 (gender blind)라는 것입니다. 여자, 남자를 각각의 성별로 좋아한다면 양성애자지만 저는 성별과 무관하게 '사람'을 좋아합니다. 그 사람의 눈빛, 제스쳐 그리고 그 사람의 옆에 서면 느껴지는 묘한 향기. 그 것들이 저를 매료시키고 정신적으로 혹은 성적으로 흥분시킵니다. 설레이기도 하고 사랑도 합니다. 그 사람의 성별이 어떠한 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렇게 성별을 구분 짓지 않고 사랑하는 것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특정 성별에게 설레이고 사랑에 빠집니다. 그 것 또한 소중하고 특별합니다. 저는 제가 특별하다고 느끼지만 그들도 저와 똑같이 특별한 사랑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저는 사랑과 표현에는 한계나 제한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사회 안에서 부정적인 시선이 종종 존재합니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본질적인 의미는 달라지지 않습니다. 서로에게 해가 되고 스스로를 아프게 하는 건강하지 못한 관계를 제외하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아픔이 미적인 부분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누구한테는 아니지만 누구한테는 정말 중요한. 하지만 모든 것은 합의 하라는 전제가 있겠지요. 


이 블로그를 통해 제가 살아오면서 경험하였던 사랑과 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물론 제 3자의 경험을 빌린 이야기도 있을 것이며 어떠한 주제에 대해 주관적으로 느끼고 생각하는 이야기도 하고 싶습니다. 동성애 혹은 여러가지 사랑의 형태들, 섹스와 쾌락에 대한 주제 등은 어떤 누군가를 불편하게 만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절대 고의적인 것은 아니며 오로지 제 감정과 생각을 표출하기 위함임입니다. 성은 신비롭고 경이로운 분야입니다. 아주 원초적인 본능입니다. 하지만 이런 주제를 수면 위로 떠올려 이야기하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존중합니다. 하지만 이 공간에서만큼은 자유롭고자 합니다. 절대 전문적인 글이 아닙니다. 어떠한 조언을 주려는 글도 아님을 말씀드립니다. 가볍게 읽기를 바랍니다.


그저 쾌(快)에 대한 한 젊은 여자의 에세이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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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엠버, 그리고 연디  (0) 2019.06.19
Posted by 주관적 엠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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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은 개인적인 경험과 제 블로그를 통해 하시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아래 메일로 연락주세요.



subjectiveamber@gmail.com



모든 정보는 익명으로 처리되며 개인적인 소장이나 외부에 쓰임은 없기에 전부 소멸됩니다.

아무 목적이 없는 음란물의 경우 신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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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바우의 말

2017. 11. 27. 17:05 from 노트

고분고분하지 않으며 그렇게 되려고 하지도 않는 여자들은 모두 어디에 있는가?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그 것을 찾고자 하는 여자들, 부취(butch: 여성 동성애에서 남성적 역할을 맡는 사람 - 옮긴이)나 여성적인 여자들의 연인들, 남자와 그짓을 좋아하는 여자들, 합의하에 S/M(새도매저키즘 - 옮긴이)을 실행하는 여자들, 딜도(dildo: 대용남근)과 관통(penetration)과 가장복(costume)을 좋아하는 여자들, 연인을 혹사시키고 더러운 말을 뱉어 내며 연인의 얼굴 위로 스쳐가는 욕구의 표현을 보고 싶어하는 여자들, 그들 자신의 일시적인 열정에 혼란을 느끼고 시험을 해보려는 여자들, 게이 남성의 격정이 뜨겁다고 생각하는 여자들은 모두 어디에 있는가?


-Amber Hollibaugh 


< 현대 사회의 성 사랑 에로티시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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