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성인이 되었다. 내가 하던 공부는 정말 매력적이었다. 연애를 할 생각은 없었다. 남자에게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고등학교 시절부터 상상을 해오던 '그녀들'과의 망상은 끊기지 않았다. 스무살. 딱 머리속의 호기심을 행동으로 옮길 용기가 생기는 나이. 내가 접속했던 사이트는 한 인터넷 카페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레즈비언 커뮤니티에서는 딱히 활성화 되어있던 공간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 곳에서 나는 동갑내기 친구 제이를 만났다. 나와 똑같이 호기심을 행동으로 옮긴, 같은 선상의 여자 아이. 제이는 자신이 바이섹슈얼이라고 말을 했다. 나도 내 자신을 바이섹슈얼이라고 이야기했다. 제이와 나는 아주 급격히 친해졌다. 그렇다고 나와 제이 사이에서 친구 이상의 해프닝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녀의 이상형은 머리가 길고 여성스러운 언니같은 이미지의 여성이었다. 나와 반대인 샘이었다. 하지만 나도 내가 '남자같은' 여자를 선호하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제이에게 성의 경계가 모호해보이는 여자와 똑같이 성의 경계가 모호해보이는 남자가 섹시하다고 이야기하였다. 제이는 그런 나의 성적 취향 (혹은 미적 취향)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도 우리의 성격은 잘 맞았고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다. 무엇보다 제이는 나의 취향에 대해 함부로 판단하지 않았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레즈비언 클럽에 처음 간 것도 제이와 함께였고 서로 첫 애인을 사귀었을 때에도 우리는 모든 것을 공유하는 친구였다. 그렇게 수 많은 해가 지난 지금도 제이와 나는 여전히 친구다. 이 세상 사람들 중 제이만 알고 있는 나의 비밀도 있다. 시작은 같은 선상이었지만 현재는 조금 다른 위치에 있는 제이와 나. 그 만큼 어른이 된 우리는 각자 내면의 정체성에 한 발씩 더 가까워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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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워드와 셰인

2017. 11. 28. 14:55 from 엠버의 이야기

내가 처음으로 여자에게 관심을 가진 것은 고등학생 시절이었다. <L워드> 라는 레즈비언 소재의 미드를 보고 극 중 셰인이라는 인물에게 너무 빠져들었다. 그녀의 중성적인 매력이 섹시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나에게 그 중성적인 매력은 '남자같은' 여자가 아닌 성별에 대한 경계가 없는 듯한 면이었다. 그녀는 나쁜 여자였다. 한 사람과 진중한 관계를 가지지 못 하고 지속적으로 여자를 찾게 되는 그녀가 안타까웠지만 간혹 특정 인물을 향한 그녀의 행위 안에서는 형언할 수 없는 진심이 느껴지기도 했다. 나는 그런 여자를 만날 수 있을까? 그런 여자와 사랑을 하게 된다면 얼마나 황홀할까? 나는 내가 그녀와 비슷한 여자들에게 빠져있던 사실을 친구들에게 숨기지 않았다. 친구들은 장난처럼 받아들였고 나도 그저 호기심인 줄만 알았다. 그 때까지 여고에 다녔었고 남자와 사귀어 본 적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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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버 소개

2017. 11. 28. 11:10 from 엠버

저는 엠버라고 합니다. 이 블로그를 시작한 이유는 글을 쓰고 싶어서 입니다. 저의 경험과 생각들, 주관적인 입장들과 관심있는 분야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감정을 표현하고 싶습니다. 


저는 범성애자입니다. 범성애자는 영어로 pansexual이라고 합니다. 범성애가 양성애와 다르게 구분될 수 있는 가장 큰 특징은 젠더 블라인드 (gender blind)라는 것입니다. 여자, 남자를 각각의 성별로 좋아한다면 양성애자지만 저는 성별과 무관하게 '사람'을 좋아합니다. 그 사람의 눈빛, 제스쳐 그리고 그 사람의 옆에 서면 느껴지는 묘한 향기. 그 것들이 저를 매료시키고 정신적으로 혹은 성적으로 흥분시킵니다. 설레이기도 하고 사랑도 합니다. 그 사람의 성별이 어떠한 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렇게 성별을 구분 짓지 않고 사랑하는 것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특정 성별에게 설레이고 사랑에 빠집니다. 그 것 또한 소중하고 특별합니다. 저는 제가 특별하다고 느끼지만 그들도 저와 똑같이 특별한 사랑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저는 사랑과 표현에는 한계나 제한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사회 안에서 부정적인 시선이 종종 존재합니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본질적인 의미는 달라지지 않습니다. 서로에게 해가 되고 스스로를 아프게 하는 건강하지 못한 관계를 제외하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아픔이 미적인 부분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누구한테는 아니지만 누구한테는 정말 중요한. 하지만 모든 것은 합의 하라는 전제가 있겠지요. 


이 블로그를 통해 제가 살아오면서 경험하였던 사랑과 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물론 제 3자의 경험을 빌린 이야기도 있을 것이며 어떠한 주제에 대해 주관적으로 느끼고 생각하는 이야기도 하고 싶습니다. 동성애 혹은 여러가지 사랑의 형태들, 섹스와 쾌락에 대한 주제 등은 어떤 누군가를 불편하게 만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절대 고의적인 것은 아니며 오로지 제 감정과 생각을 표출하기 위함임입니다. 성은 신비롭고 경이로운 분야입니다. 아주 원초적인 본능입니다. 하지만 이런 주제를 수면 위로 떠올려 이야기하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존중합니다. 하지만 이 공간에서만큼은 자유롭고자 합니다. 절대 전문적인 글이 아닙니다. 어떠한 조언을 주려는 글도 아님을 말씀드립니다. 가볍게 읽기를 바랍니다.


그저 쾌(快)에 대한 한 젊은 여자의 에세이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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